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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일본영화 전문번역가 강민하씨 번호 36
이 름 관리자 조회수 4003
  벌거벗은 세 아저씨가 살금살금 걸어간다. 두 눈을 가리고 있던 아이가 큰 소리로 외친다. “다루마사앙가 코오론다!” 움찔, 제자리에 멈추는 세 아저씨. 스크린 오른쪽에는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라는 자막이 떴다. 지난해 개봉한 일본영화 ‘기쿠지로의 여름’의 한 장면이다.

“일본어 뜻은 ‘눈사람이 굴러갑니다’예요. 그대로 옮겨서는 실감이 나지 않지요. 곰곰이 생각하다 글자수를 세어보니 10음절이더라고요. 우리말의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도 10음절. 이거구나 싶었어요”


강민하씨(27)는 일본영화 전문번역가. ‘러브레터’ ‘사무라이 픽션’ ‘춤추는 대수사선’ ‘감각의 제국’ ‘이웃집 토토로’ ‘모노노케 히메’…. 극장에 걸린 일본영화 대부분이 그의 손을 거쳤다. 경력 6년째. 지금까지 번역한 영화가 줄잡아 55편을 넘는다. 첫 작품은 1999년 5월 개봉한 ‘우나기’였다. 시사회날 극장 뒤쪽에서 영화를 지켜보던 강씨는 “심장이 쿵쿵 뛰는 소리가 옆 사람에게 들릴 것만 같았다”고 했다.


지금도 첫 시사회날에는 심장이 쿵쿵 뛴다는 강씨가 영화와 인연을 맺은 것은 97년 일본 교환학생 때. 한 국내 영화잡지의 일본통신원을 맡으면서였다. ‘퐁네프의 연인들’ ‘나쁜 피’ 같은 유럽영화를 즐겨보던 ‘시네마 키드’였던 강씨. 이와이 ●지·이타미 주조 등 일본감독과 영화제들을 찾아다니며 일본영화를 공부했다. 그 인연으로 98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기자회견을 통역하고 처음 자막번역도 맡았다. ‘무호마쯔의 일생’이라는 고대물. 강씨는 눈썹을 찡그리며 “완성도가 떨어지는 번역이었다”고 평가하지만 그후부터 주문이 밀려들기 시작했다. 작품 3편이 동시에 상영되기도 했다. 처음 일을 맡게 된 것은 인맥과 행운 덕분이었지만 그 다음은 강씨의 몫이었다.


마음만 먹으면 하룻밤에도 뚝딱 만들어 낼 수 있는 영화자막. 그러나 강씨는 “영화 한 편을 번역하기 위해 적어도 20번은 돌려본다”고 말했다. 편당 작업시간은 1주일 이상. 두 줄 16자의 원칙에 맞춰 말을 압축하는 것보다 유행어나 속담을 자연스러운 우리말로 풀어주는 것이 더 어렵다고 한다. 그의 책상에는 속담·고사성어 사전부터 우리말 은어사전, 지명사전 등 각종 참고도서가 수두룩하다.


“우리나라 관객들은 말로 만들어내는 농담에 잘 반응하는 경향이 있어요. 그렇지만 실제 장면은 밋밋한데 자막만 보고 웃는다면 그건 ‘오버’예요. 일본 관객들이 10번 웃었다면, 우리 관객들도 10번 웃도록 만드는 것이 번역가의 작업이지요”


전문지식도 빠질 수 없다. 파일럿 영화를 번역하기 위해서는 비행기술을, 고대물을 번역하기 위해서는 일본 고전문학을 공부해야 한다. 심의를 통과하기 위해 수없이 가위질된 ‘감각의 제국’. 원작에 없는 자막을 넣어 분위기를 살리자는 유혹 앞에서 단호하게 “그럴 거면 번역자 이름을 빼라”고 요구할 수도 있어야 한다. 수두룩한 ‘일본어 도사’들을 제치고 영화제작사들이 ‘강민하’를 찾는 이유다.


올 여름 극장가엔 그가 번역한 ‘환생’과 애니메이션 ‘고양이의 보은’이 걸릴 예정이다. ‘환생’은 적당한 개봉관을 찾지 못해 애를 먹었다고 한다. 번역해 놓고도 개봉하지 못한 이와이 순지 감독의 ‘피크닉’을 생각하면 안타깝단다. 영화를 좋아하다 번역도 하게 되었다는 그는 “나이가 많이 들면 좋은 영화를 만드는 제작자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출처: 경향신문 2003년 06월 25일